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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출신 '천재 화가'의 은둔… 비밀은 가족이었다(2013. 5.22. 조선일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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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승동표(1918~1996)는 타계 1년 전 전북대병원에서 폐암 수술을 앞두고 세 아들을 모았다. 6·25전쟁 와중이던 1·4 후퇴 때 홀로 월남한 그는 "미처 못 한 말이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북에 아내와 2남1녀를 두고 왔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이 수술에서 깨어나지 못해도 통일이 되면 꼭 만나달라는 부탁이었다.

승동표는 광복 후 북한에서 무용가 최승희 등과 함께 '조선예술동맹'에서 활동하며 최상급으로 대우받던 서양 화가였다. 평북 정주에서 모교인 오산고보 미술 교사로 재직하며 당의 요청으로 김일성 초상화도 그렸다. 1936년 조선일보가 개최한 제1회 '조선학생미전'에서 '꽃다발이 있는 정물'로 최고상인 특선을 차지한 유망 청년이었다. 이중섭(1916~1956)의 고보 1년 후배로 동경의 일본미술학교에 유학하며 경성의 조선미술전람회에서 2회 연속, 동경의 독립미술전람회에서 3회 연속 입선하기도 했다.

이런 그가 월남한 뒤 '잊힌 작가'가 됐다. 그림을 그렸지만 단 한 차례도 전시회를 열거나 출품하지 않았다. 단 한 점도 팔지 않았고 몇몇 제자와 지인에게만 선물로 전했다. 서울 유명 대학의 교수 초빙에도 응하지 않았다. 월남 후 정착한 전북을 떠나지 않고 조용히 중·고교 미술 교사로 후진 교육에 몰두했다. 자신이 알려지면 북에 두고 온 가족에게 어려움이 닥칠 것이란 걱정에서였다. 승 화백의 둘째 아들 수근(53)씨는 "세 아들 모두는 45년을 견디신 아버지의 아픔에 지금도 가슴이 아린다"고 말했다.

운봉(雲峰) 승동표 화백의 유작들이 작고 17년 만에 전북대 박물관에 기탁됐다. 전북대 박물관은 최근 그의 세 아들이 나눠 보관해오던 작품 및 유품 200여점 가운데 서양화 75점, 드로잉 33점에 유품까지 모두 149점을 기탁받았다. 수근씨는 "작품을 항온·항습 수장고에 오래 보관하면서 아버지의 작품 세계를 더 널리 알리기 위해 유품 기탁에 뜻을 모았다"고 했다.

승 화백의 작품은 그가 떠난 지 2년 뒤인 1998년에야 대중에게 선보였다. 덕수궁 미술관 개관 기념전에 작품 3점이 처음 전시된 뒤 그의 유작들은 전주와 서울의 전람회에 수차례 초대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06년 그의 작고 10주기 회고전을 열면서 작가로서 그의 위상을 복원했다. 승 화백은 폴 세잔의 후기 인상주의와 야수파·입체파 화풍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받았고, 미술계에선 그를 '조선의 세잔' '한국의 세잔'으로 부르기도 했다.


승동표 화백은 다양하고, 때로는 입체적인 구도의 정물을 즐겨 그려 일본 유학 시절 별명이‘조선의 세잔’이었다고 한다. 기탁 작품 특별전을 앞두고 둘째 아들 수근(오른쪽)씨가 이태영 전북대 박물관장에게 작품‘정물-차와 과일’(1989년 작)을 소개하고 있다. /김창곤 기자

전북대 박물관은 유작 기탁에 감사하며 우선 유화 30점을 골라 22일부터 내달 29일까지 '승동표 특별전'을 연다. 미술 평론가인 김선태 예원예술대 교수는 "승 화백은 구도가 다양한 정물을 즐겨 그렸지만 터치가 굵고 색채가 화려한 풍경 이면에는 진한 그리움과 슬픔이 배어 있다. 그의 작품에서 근현대사의 질곡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전북대 박물관은 특별전과 함께 승동표의 삶과 예술 세계를 재조명하는 특강과 세미나를 기획하고 있다. 이태영 전북대 박물관장은 "가족 뜻대로 '승동표미술관'이 건립될 때까지 박물관이 고인의 유작·유품을 고이 간수하면서 교육에 활용하고 순회전을 통해 널리 감동을 전하겠다"고 했다.

승 화백은 1951년 정읍중 교사로 전북에 정착한 뒤 6년 만에 결혼해 수관(55)·수근·수종(47)씨를 낳았다. 혈혈단신으로 월남한 뒤 가족과 재회하기를 그리는 그의 외롭고 피폐한 생활을 보다 못한 동료 교사들의 중매로 40세 때 초등 교사 조공순씨와 결혼했다. 부인 조씨는 1990년 타계했다.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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