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봉승동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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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 승동표 선생 유작 초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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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김은정(kimej@jjan.co.kr)  2002.11.24 
 
 
작가는 갔으나 작품은 남았다. 그가 세상에 남기고 간 작품은 유화 91점과 드로잉 60여점이 전부. ‘내 생전에 전시회는 하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세 아들은 부친이 작고한지 6년만에서야 비로소 꼭꼭 묶어두었던 유작들에 옷을 입혀 빛을 보게 했다. 

운봉 승동표 선생(1918-1996)의 유작 초대전(28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평안도 민족학교인 오산학교 시절, 화가로서의 재질을 눈여겨 본 스승의 권유로 일본미술학교에 유학, 일본 공모전과 선전에 수상 하면서 화단의 주목을 받았지만 민족분단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은 채 화가로서의 길을 포기했던 불운한 삶을 그의 유작으로 만나는 일은 특별하다. 

1960년대 끓어오르는 창작열정을 더 이상 묻어두지 못하고 그려냈을 20여점의 유화, 그리고 70년대를 훌쩍 뛰어넘어 80년대 시간속에서 다시 그려진 작품과 퇴직후 틈틈히 그려냈던 근작들은 작가로서는 불우한 생애를 살아야 했던 그의 진지한 예술관을 고스란히 안겨준다. 

절제되고 담백한 색채로부터 사물의 이미지를 끌어내는 그의 언어는 낯설다. 

번뜩이는 재치와 온갖 실험적인 형식들을 아우르며 강렬한 메시지로 다가오는 현대미술의 물결속에서 대상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성실하고 견고하게 화폭을 채워낸 그의 그림은 오늘의 관객들에게는 좀체 친숙해지지 못할 정도로 독특한 화법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상을 읽고, 분석하고 이를 표현하는 세단계를 명확하게’ 지키고 있는 그의 그림들은 한결같이 진지하고 깊이 있는 화풍으로 세월의 간극을 감추고 있다. 

아쉽게도 그의 초기작을 볼 수 없지만 유작을 통해 그가 추구해온 예술세계의 깊이를 짐작하는 일은 그래서 어렵지 않다. 

운봉을 발굴하고 그의 작품세계를 주목한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우리 미술사에서 세잔느풍의 지적인 태도가 없었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는 의미가 있는 일일뿐더러 우리 미술사에서 현대미술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생략된 입체파적 전통과 비추어보아도 그 의미는 깊다”고 평가한다.

작가로 이름을 남기기 보다는 시골학교 미술교사의 기릉ㄹ 기꺼이 선택했던 운봉의 존재가 우리 미술사에 어떤 의미로 남을 수 있을 것인가는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월남한 이후 정읍에 삶의 기반을 내린 이후 이 지역의 교육자로서 생애를 다 보냈던 그가 우리에게는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지난 97년의 오산미술 90년전과 98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다시 찾은 근대미술전'', 99년의 오산학교 개교 1백주년 기념동문전을 통해 세상과 만난 운봉의 유작들이 유품들과 함께 지금, 전시되고 있다. 

정직하고 진지한 그의 그림들을 둘러보다보면 왜 우리가 이 낯선 화풍에 겸손해지는가를 깨닫게 된다. 운봉 승동표유작전을 놓치기 아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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